19대 대선의 보수진영과 홍준표에 대한 단상


대선이 끝났습니다. 2002년 처음으로 투표권을 가지게 된 이후로 가장 결정하기 어려웠던 선거가 끝났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제가 지지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정의당 후보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5등 정당에게 한 표를 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노통 이후 처음으로 제가 표를 던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기뻐야 할 날이지만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정의당에 대한 속상함이 하나의 이유라면 또 다른 이유 하나는 무난히 20% 득표율을 넘긴 홍준표 때문입니다.

 

홍준표의 24%, 틀딱들 때문인가?

제 마음이 불편한 것과는 별개로 사실 홍준표가 24%의 표를 가져간 현재 상황은 굉장히 고무적이라고 봅니다. 저를 포함한 모두가 ‘홍준표 같은 인간이 20% 넘는 표를 가져가다니 부들부들’ 하고는 있지만 대선 사상 보수진영에서 최다 득표 한 후보가 40% 미만의 표를 득표한 것은 13대 대선의 노태우(당선)와 15대 대선의 이회창(낙선) 뿐이었습니다. 둘다 무난하게 30%를 넘는 득표율을 가져갔었죠.

틀딱들 때문에 아직도 홍준표 같은 인간이 20% 넘게 가져간다고 욕한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행자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자료를 참고 해 보면, 대한민국 인구 중에 50세 이상 인구는 대략 1880만명, 투표권을 가진 20세 이상의 인구는 대략 4180만명으로 비율로 따지면 50세 이상 인구는 전체 유권자의 약 45%에 달합니다. 젊은 층에서도 홍준표를 찍은 표가 꽤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선거에서 50대 이상중에 홍준표를 찍은 사람은 최대 절반 정도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60대 이상으로 한정하면 비율이 꽤 높아지겠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틀딱들이 덮어놓고 홍준표 찍었다 라고 말하기엔 이번 선거는 그런 수준은 아니었다는 거죠. (물론 안철수와 홍준표가 나눠먹은 표를 생각하면 여전히 진땀 나는 상황이긴 합니다만)

그리고 이 전까지 보수 지지연령대로 분류되던 50대가 이번 선거에서는 문재인 / 안철수 / 홍준표로 분산되어 투표를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선거에서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이 24% 의 득표에서 그친 것이 중장년층과 노년층 덕분 이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홍준표는 대선 후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하기위해 30%는 무난히 넘겼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오히려 안철수와 보수세력을 나눠가져야 한다는 부담을 지게 되었습니다.

 

홍준표는 틀딱에 멍청이인가?

하지만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홍준표가 나름 선방을 했으며, 대선 레이스 기간동안 다섯명의 후보 중에서는 홍준표가 가장 똑똑한, 성공적인 행보를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자신이 대표하는 진영을 바탕으로, 선거 결과를 유리하게 끌고나가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했을 때의 이야기 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홍준표의 목표는 명확했습니다.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재인의 당선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홍준표의 목표가 대통령 당선은 아니었을겁니다.  되면 대박이고, 아니더라도 대선 주자로 나와서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었죠.

안철수, 유승민을 꺾는다.

대선 이후 보수층을 결집시킬 구심점이 된다.

갈라진 보수진영을 자신 위주로 재편한다.

자유한국당을 자신의 계파로 채운다.

국회 내에 문재인 대통령을 견제할 정치세력을 만든다.

여러가지 문장으로 표현했지만, 간단하게 표현하면 대선을 2위로 완주하면 다 이룰 수 있는 목표들 입니다.



다만, 레이스를 시작 할 무렵의 홍준표는 2위와 차이가 꽤 나는 3위였고, 위 목표는 달성하기 쉬운 목표는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안철수라는 만만찮은 상대가 있었고(심지어 안철수랑 홍준표는 어느 정도 표를 공유하는 관계죠), TK 지역 이외의 지역에서는 확실히 표를 얻을 수 있는 배경이 없었습니다. 탄핵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라는 똥물도 뒤집어 쓰고 있었구요, 바른정당의 유승민이라는 만만찮은 고춧가루 후보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대선 레이스 이후의 홍준표가 정말 무섭도록 똑똑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홍준표는 전형적인 꼰대 타입의 인간이긴 하지만 무식하거나 생각이 없는 타입은 아닙니다. 능력도 있는 편이지요. 방법은 아주 지독했지만, 경남도지사 시절에 1조가 넘는 채무를 없애는(갚은 건 아닙니다.)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검사시절의 행적까지 넘어가면 사실 홍준표는 굉장히 유능하고 저돌적이면서 추진력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홍준표의 호전적이고 안하무인적인 꼰대같은 모습, 그리고 그의 행동과 말들은 다분히 계산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산적이라는 표현은 ‘원래는 착한사람이다’가 아니라 원래 그런 류의 인간이지만, 그 모습을 전략적으로 극대화 시켜서 활용했을 것이라는 이야기 입니다.

 

홍준표의 전략은?

  • 삼각김밥 “이게 뭐야? 모르겠는데?”

홍준표에게 삼각김밥을 내밀자 돌멩이냐고 물어보더니 나는 이런거 모르겠다며 짜증섞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뭔가 새로운 것을 알려드릴 때, 이해를 못하신 아버지의 반응과 비슷합니다.

 

  • 야들아, 내가 느그들 롤모델이다.

부연 설명이 필요 없죠.

 

  • 버르장머리 없이!

JTBC후보자 토론회에서 문재인과 논쟁을 하다가 버르장머리 없다는 표현을 써가며 화를 냅니다.

 

홍준표가 대선 레이스 기간 동안 보여준 각종 언행, 행동들은 정확하게 우리 세대의 ‘아버지’를 조준하고 있습니다. 신구세대의 충돌, 이념의 충돌, 성별의 충돌에서 밀려난 세대이자 경제고속성장시대에 한 몸 바쳐 기여했지만 지금에 와서 찬밥신세가 된 그 분들에게 강한 남자, 강한 아버지, 강한 남편의 모습으로 매력을 어필하는 것이죠.

구시대적인 전략이지만, 구세대 지지층을 공략하는데는 효과적인 공략이었습니다. 물론 제 1야당의 후보였기 때문에 실제 선거에서 같은 보수 야당인 바른정당 유승민의 표를 좀 더 가져온 경향은 있지만 (문재인이 심상정의 표를 가져갔듯이) 결과적으로 홍준표는 안철수를 넘어 2위로 대선 레이스를 종료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상황에서 이정도 득표를 했고, 자유한국당이 제 1 야당으로 포지션을 굳힐 수 있었던 것에 홍준표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대선 후보들이 어느정도 구체화 될 때 까지도 홍준표가 보수진영의 가장 유력한 후보가 아니었음에도 이 정도의 결과를 낸 것은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고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질 사람이 필요하긴 하지만, 보수진영에서 홍준표의 입지는 당분간 탄탄할 전망입니다.

대선에서는 패배했지만 홍준표와 자유한국당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대부분 챙겼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유한국당과 홍준표의 막말과 안하무인적 태도는 상당부분 전략적인 액션이었습니다. 그런 액션이 보수 지지층을 상대로 먹힌다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고, 그리고 실제로 먹혀서 홍준표는 24% 득표율로 2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유승민이 대선 후에 보수 지지층의 구심점이 되길 바랐지만, 범 보수진영으로만 분류해도 유승민은 안철수에 이어 3위에 그쳤습니다. 다만 범 보수진영의 2위인 안철수와 홍준표의 표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았던 점이 그나마 다행스럽습니다.

다음 총선까지 보수진영이 어떻게 조직을 재 정비 할 것인지, 그들간의 이합집산이 어떤형태로 나타날 것인지를 예상해 보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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