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의 비애

먼저, 이 글은 절대로 리니지2 레볼루션에서 주간 퀘스트를 하다가 자꾸 눕는 바람에 빡쳐서 핸드폰 끄고 쓰는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그리고 기계식 키보드의 타건감을 느끼고 싶어서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글도 아님을 밝힙니다.

 

2015년 1월에 처음으로 디메이저 기획2팀 팀장으로 발령이 나면서 과장으로 진급하고, 직급 변경과 병가, 퇴사, 재입사 등 우여곡절 끝에 2016년을 보내는 이 시점에는 디메이저 플래닝 그룹의 차장으로 근무 하고 있으니 저도 어느새 만 2년차 시니어가 되었습니다.

중간에 병가와 퇴사가 있었으니 시니어로 회사를 다닌 것은 1년 반이 조금 못되는 기간입니다.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이 보시기에는 실소가 나올만한 풋내기 시니어(?)지만, 어쨌든 그 동안 겪은 일 들을 생각하면 이제 ‘나도 시니어구나’ 하는 자각을 가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사실 2016년 12월 1일에 디메이저에 재입사를 할 때만 해도, 저는 스스로 시니어라는 자각이 없었습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팀장으로, 차장으로 일을 하고 또 그만한 연봉을 받으며 갖은 혜택은 다 누려놓고 자각이 없었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문제다 싶긴 한데… 자각이 없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팀원들 모두가 저를 편하게 대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편하고 격 없이 대하는 만큼 모두가 나를 편하고 스스럼 없이 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 차장급 중에는 가장 나이가 어린 축이라 그런지 윗분들은 제가 승진을 하고 난 후에도 참 편하게 대해 주셨기 때문에 제가 자각을 못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회사에 재입사를 하고 나니 묘하게 위화감이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회사에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제가 퇴사를 한 사이에 제가 모르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인가 싶었습니다. 디메이저도 신사동으로 사옥을 옮겼고, 이노버즈, 디브로스와 함께 Group I.D.D.로 합쳐지고 있는 과정이라… 회사가 전체적으로 약간 들뜬 분위기이기도 해서 이 위화감의 정체를 깨닫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가 느낀 위화감의 정체는 ‘어려움’ 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절 어려워하고 있더라구요. 조직의 밖에 오랜 시간 있다가 다시 돌아오고 나서야 위화감을 느꼈으니 저도 참 둔한 사람입니다.

우습게도 제가 어려움의 대상이 되었다는 걸 느끼게 된 그 날, 저는 거의 멘붕이었습니다. 누가 절 어려워 한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라서 엄청나게 당황했고, 그래서 평소에 저를 전혀 어려워 하지 않는 다고 생각했던 회사 후배들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습니다.

제가 늦게 자각 했을 뿐, 이미 오래 전 부터 제가 어려운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후배들로부터 듣고 나니 약간의 허탈함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아직 사원 대리들이랑 더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에게 저는 다른 팀장, 차장들하고 같은 선상에 있는 사람이었고 자신들 보다는 부장님들, 임원들하고 더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이성적으로 생각 해 보면 당연한 일인데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한편으로 우습기도 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부장님들, 임원분들이 어렵고 사원 대리급 친구들이 편하니까 막연하게 그들하고 더 가깝다고 느꼈던 거죠.

제가 ‘시니어’임을 자각하게 된 그 날 부터 그 동안 어긋나있던 많은 부분이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던 부분들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해가 되지 않던 것이 이해가 되는 것은 이런 부분입니다.

K부장님은 저한테 좋은 형같은 분입니다. 장난도 많이 치고, 실없는 소리도 많이 하고 그 만큼 진지한 상담도 많이 하는 그런 형이죠. 근데 복귀하고 나서 보니 다른 팀원들은 K부장님을 어려워 하는게 확 와닿게 느껴졌습니다. 복귀하고 며칠동안은 ‘이 형은 참 좋은 사람인데 왜 팀원들이 어려워 할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알게 됐죠. 사원, 대리한테 부장은 그냥 어려운 사람인 겁니다. 성격이 좋으면 성격 좋고 어려운 사람, 성격이 나쁘면 성격 나쁘고 어려운 사람, 일 잘하면 일 잘하고 어려운 사람, 일을 못하면 일 못하고 어려운 사람인거죠. 그리고 그런 어려운 사람을 형이라고 생각하고, 어려워 하지 않는 저도 역시 그들에게는 어려운 사람인 건데, 그동안 저만 그걸 몰랐던 겁니다.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된 것은 예를 들자면 점심시간 같은 것이죠.

그 동안 저는 직급을 가리지 않고 이런저런 사람들과 어울려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저랑 같이 밥 먹는 사람들의 직급 같은 걸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냥 오늘 밥 같이 먹고 싶은 사람한테 밥을 먹자고 하거나 혹은 점심시간에 같이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한테 밥을 먹자고 했습니다. 퇴사 전에는 너무 당연하게 팀원들한테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구요.

그런데 이젠 그게 당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저랑 눈이 마주친 대리는 다른 사람과 점심을 먹고, 먹고 난 후 남은 점심시간까지의 계획이 있는 사람이고, 제가 밥을 같이 먹고 싶은 사원은 당장 밥을 먹는 것 보다 오늘 퇴근시간까지 빡빡하게 일을 해도 일할 거리가 남아있을 걱정에 입맛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 뭐 먹으러가? 같이 점심 먹자.”라고 이야기를 하면 크던 작던간에 불편을 느낄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뭘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나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생각해 보면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맞더라구요. 그렇게 밥 먹으러 나가서 제가 “난 어제 저녁에 양식 먹어서 오늘은 양식은 별로다.”라고 말하면 그 사람들 한테는 오늘 점심에 양식은 먹지 못하는 음식이 되는 거니까요.

이런 저런 내용을 길게 썼는데, 결론을 이야기 하자면 저는 누군가에게 불편하고 어려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제가 시니어로 일을 하는 이상 제 의지와 상관 없이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안 이상 차라리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일 것 같습니다. 제목에도 썼다시피 ‘시니어의 비애’ 정도로 표현하면,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에서 쓴 웃음 한 번 짓고 넘어갈 수 있을만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어렵지만 좋은 시니어’가 되고자 합니다. ‘좋다’라는 것이 좀 막연한 표현이긴 한데, 아마 일을 잘해서 배울게 많은 사람이라는 뜻은 아닐 것 같습니다.

지금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주니어의 입장에서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수 있고 어려울 때 의지가 되는, 그리고 책임질 사람이 필요할 때 그 책임을 맡길 수 있는 그런… 시니어가 되고자 합니다. 원하는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고민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조금이나마 낫겠죠.

그런 고로, 앞으로도 당분간 점심시간이 되면 안절부절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점심을 같이 먹을만한 친한 차, 부장님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크게 실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눈치껏 다양한 사람들과 식사를 하려구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7개월 만에 회사에 돌아온 거라서 친한 사람들 보다는 친해져야 할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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