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도 : 아르헨도 or 현도대인

한국 힙합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 전 부터 있어왔다. 단순한 ‘최초 시작’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은 한국에서 ‘진정한 힙합’의 시작은 ‘현진영’과 ‘듀스’라는 것이다. 지금의 힙합과는 형식적인 부분을 비롯한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먼저 거론한 두 팀의 음악이 비교적 힙합의 기본을 충실히 지켰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그들의 곡은 힙합 보다는 댄스음악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이현도가 방송 데뷔한 것이 ‘현진영과 와와’를 통해서 였으니 이현도와 현진영은 이래저래 뗄래야 떼기 어려운 관계이다. 하지만, 오늘은 과감하게 딱 잘라서 이현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사실 이현도 이야기만 한다고 해도 글 다섯 편 정도는 너끈히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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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인가. 살이 많이 쪘다.

듀스가 해체한 해인 1995년도에 초등학교 5학년이던 내가 듀스 시절의 그의 음악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아무 생각없이 가요톱텐을 통해 그들을 접하고, 길거리에서 파는 짝퉁 테입을 거리낌없이 구입하던 초딩에게 음악적인 접근이란 너무 무리한 일이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듀스와 이현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故 김성재의 사후, Best앨범과 DUEX Forever앨범이 발매된 이후부터이다. 특히 베스트 앨범에 실린 ‘사랑, 두려움’이라는 곡을 통해 본격적으로 듀스라는 그룹을 접하게 되었으니 실제로는 듀스의 음악에 대해서는 꼬꼬마 리스너나 다를 바 없는 입장이다. 아직도 ‘사랑, 두려움’을 벨소리로 넣어가지고 다니지만, 듀스의 음악에 대해서는 잘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욕먹을 것을 각오하고 꿋꿋하게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확실히 듀스 시절의 이현도는 음악에 대한 센스가 남달랐다. 당시 가요계를 잠식했던 서태지 신드롬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들의 색깔로 그 거대한 태지보이스와 맞서던 듀스의 프로듀서가 아닌가. 어린시절, 듀스보다 태지보이스를 훨씬 좋아했던 나지만 이현도의 음악적인 재능에 대해서는 ‘존경’이라는 표현을 아낄 생각이 없다. 앞서 이야기 했다시피 김성재 사후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들었던 듀스의 음악들은 이미 발매된 지 한참 지난 음반이었음에도 전혀 촌스럽다거나 시대에 뒤쳐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다시 듀스의 앨범을 들어도 마찬가지의 느낌을 받는 것을 보면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을 클릭하시면 듀스의 뮤직비디오를 감상 할 수 있는 [Story Of Lami]블로그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후 발매된 솔로 1집 앨범 ‘Do It’의 경우에는 나의 기대감을 완전히 뭉개버렸다. DO를 대인이라고 불러가며 추종하는 수많은 듀시스트들이 이 글을 본다면 거품을 물고 달려들겠지만, 솔직한 내 생각은 솔로 1집에는 DO의 음악적 역량이 반도 드러나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자후’와 같은 곡은 제법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것은 DO라는 뮤지션에 대한 애정이었을 뿐, 만일 다른 가수가 이 곡을 불렀더라도 그만큼의 사랑을 받았을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대답하기는 힘들다.

그 이후에 발매된 앨범들 중 힙합의 범주를 벗어나서 높게 평가할 수 있는 앨범은 싱글 ‘사랑해’와 프로젝트 앨범인 ‘D.O Funk’이다. 이 두 앨범은 비록 정규앨범은 아니었지만 DO가 댄수가수의 이미지를 벗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앨범이 아닐까 생각한다. 두 앨범을 거치는 동안 DO는 진정한 의미의 ‘뮤지션’으로 사람들에게 각인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힙합 뮤지션, MC로서의 DO가 완성되는 것은 보다 뒤인 2000년에 발매된 ‘完全Hiphop’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사실상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완전한 힙합’은 이 앨범 단 한장 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더 뒤에 나온 뉴 클래식 앨범 같은 경우에는 프로듀서와 작곡가로서의 역량을 증명하긴 했지만, DO가 녹음에 참여한 비중이 너무 작아서 온전하게 DO의 힙합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글 전체를 통해 드러나듯이 나는 개인적으로 DO를 힙합뮤지션으로서 아주 높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한국 힙합 1세대로서 그의 공로를 인정하지만 음악 자체로서 DO의 힙합을 인정한 것은 몇 곡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남득할 수 있고, 감탄할 수 있었던 DO의 곡은 모두 이 완전힙합 앨범에 담겨져 있다. ‘삐에로’와 ‘흑열가’, 이 두 곡이 내가 인정하는 DO표 힙합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비록 수많은 앨범 중에 달랑 두 곡일 뿐이지만 그래도 나는 한국 힙합씬에 한 획을 그은 인물 중에 DO를 빼놓지 않는다. 그만큼 이 두 곡은 당시 난립하던 수준미달의 힙합음악들 가운데 군계일학이오 낭중지추라고 할만한 곡들이었다. 비록 그때만해도 힙합음악의 저변이 그다지 넓지 못한 상태라 이전에 발매했던 그의 앨범들에 비해 상업적으로 성공을 하지는 못한 앨범이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곡의 퀄리티가 낮았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 앨범 이후, 힙합 뮤지션으로서 DO의 역량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하게 되었고 DO힙합의 연장선상에서 가장 최근에 발매된 ‘뉴 클래식’ 앨범은 그야말로 DO의 프로듀서적 재능이 만개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뉴 클래식 앨범에 도움을 준 수많은 걸출한 후배 MC들의 영향이 컸지만, 그렇다고 해서 DO의 역량을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DO에게 가장 아쉬운 점은 음악 외적인 측면에서 ‘대인’의 풍모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일명 ‘아르헨도’사건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연예계 데뷔 15년을 훌쩍 넘긴 ‘대인배’의 행동으로는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이 나의 평가이다. 대체적으로 힙합씬에 몸을 담고 있는 뮤지션들이 말을 좀 막하는 경향도 있고, 또 그러한 행위를 ‘자유’나 ‘당당함’과 헛갈려 한다는 것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해왔다. 이 바닥에서 구를 만큼 구른 DO가 그정도의 대응밖에 할 수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더욱 큰 것은, 그를 ‘대인’이라 부르며 추앙하는 수많은 듀시스트들의 애정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리 좋게 봐 주어도 듀시스트는 아니다. 듀스는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현도 개인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도 많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DO의 재능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기에, 언젠가 또 다시 DO스타일의 힙합을 들을수 있게 되길 내심 바라고 있다.

덧.
이현도의 경우 병역법이 개정되기 전에 이미 아르헨티나의 영주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현도가 병역처분을 받을 당시에는 외국의 ‘영주권’만 가지고 있어도 국방의 임무가 면제되었다. 이현도의 국적은 여전히 ‘대한민국’이며 그는 외국인 노동자 스티븐 유와는 전혀 다른 케이스이다.

이제 아르헨도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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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omments

  1. 스티붕유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쓰레기 종자
    존만한씹새지원 을 본명으로두고 별명 아르헨도 로 불리는 종자지
    더 이야기 할게 있나? 이름과 별명으로 어떤 종자인지 간단 하게 설명 해주는데 뭔음악이 어쩌고 저쩌고는 지랄 ~ 개 소리 일뿐이지
    음악 당시 듀스 음악도 귀에착착 감기고 춤도 좋아서 인기 있던거 모르는 사람 있나?
    인기 있다고 양아치가 사람이 되나? 인기 있다고 도의적인 죄가 용서가 되나?

  2. 전 이현도1집을 이현도 최고의 걸작으로 꼽습니다.
    발라드에서부터 힙합까지 모두 이현도 스타일의 뉴잭스윙으로 아우르는
    단 하나의 엘범입니다. 그리고 그가 막말(?)댓글을 한것은
    대인이고 소인이고 를 떠나서 인간대 인간이기에 어떤 위치의 높낮이가 없기에
    또한 막말을 먼저한 개념없는 네티즌들에게 쓴소리 한것입니다.
    저는 이현도의 그런 자유분방함이 지금의 이현도의 음악적퀄리티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봅니다.

  3. 꽃수염님 블로그 날마다 즐겁게 구경하고 있습니다.

    글솜씨가 대단하시네요 ^^;
    저도 이것저것 음악들 정리해두는 블로그를 만들긴 했는데 이놈의 글솜씨가 참 부족하다보니
    너무 힘드네요 부럽습니다.-_-;;

    이현도씨의 솔로 1집의 성공은 아무래도 김성재씨의 죽음이 가장 크게 작용했겠죠.
    누가 뭐래도 그건 부인할수 없을겁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타이틀곡 “사자후”가 차트1위를 휩쓸만한 곡은 아니었다고 보거든요.

    이현도씨의 음악을 함께하며 김성재씨의 죽음을 추모하는 분위기 였다고 할까…
    당시 고등학생이던 저의 주변 분위기는 그랬습니다.

    물론 음악적으로 이현도씨의 역량은 의심할바 없다고 봅니다.
    언제나 기대를 가지게 하고, 그 기대에 부응하는 뮤지션이니까요.

    앞으로도 좋은 글들 많이 부탁드립니다.

    언젠가 제 블로그가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면 그때 놀러와 주세요^^

    OneLove -_-/

  4. 흑열가. 한국힙합에 단체곡의 시초??? 는 아니겠지만 참 충격적이였음. ㅎㅎㅎ

    드렁큰타이거, 조pd, 다크루, 윤미래 등등 참 많은 mc들이 참여한걸로 기억하는데, 예전에 음반이 있었는데 이사오면서 분실 ㅡㅡ”

    아무튼 저는 이현도하면 흑열가만 생각나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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